이탈리아의 세계유산 일람

세계 제일의 수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유네스코 세계 유산은 2008년의 시점부터 전부 41건이나 있다. 덧붙여서 2위 스페인(40건), 3위 중국(35건), 4위 독일(32건), 5위 프랑스(31건)이다.

2007년 시점에서 세계 유산은 모두 851건이 등록되어 있고 그 내역은 문화유산 660건, 자연 유산 166건, 복합 유산 25건이다. 문화유산의 등록수가 많은 지역으로서는 유럽이 가장 많다.


이탈리아 세계유산 일람
명칭(문화유산) 등록연도
장소
해설 사진
발카모니카의 바위 그림
Arte rupestre della Val camonica
1979년
토리노와 그 주변
(피에몬테주)
알프스 산록의 오리오 강가에 약 70킬로나 계속되는 계곡에 있는 이 지구의 암석에는 약 1만년 전의 도안에서 로마 제국 시대의 알파벳까지 약 8000년간에 걸친 「선각화」가 많이 남아 있다. 바위에 새겨진 14만 이상의 도안은 농경, 항해, 전쟁, 마술, 지도 등을 테마로 그려져 있고 나콰네 암벽 조각 국립공원(Parco Nazionale delle Incisioni Rupestri di Naquane) 안이나, 나드로, 루이네 등의 카모니카 계곡의 몇군데에서도 볼 수 있다. 발카모니카의 바위그림
로마 역사지구, 교황령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Centro storico di Roma, le Proprieta della Santa Sede che godono dei diritti di extraterritorialita, e San Paolo Fuori le Mura
1980년
로마시내(라치오주)
로마는 기원 전 753년에 건국되었어 공화국으로부터 제국으로 발전했다. 역사 지구에는 80년에 티투스제가 건축한 경기장 「코롯세옴」, 파라티노의 언덕과 칸피드리오의 언덕 중간에 위치하는 로마 제국의 정치·상업의 중심 「포로 로마노」, 217년에 카라카로제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1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중 목욕탕 「카라카라제 목욕탕」, 도무스 아우레아, 고대 로마 신들의 신전 「판테온」, 아우구스트스 제사당 등이 있다. 산 파올로 프오리 레 무라 대성당은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제에 의해 건축된 성 파올로의 무덤이 있는 성당이다.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아 교회와 도메니코회 수도원
La Chiesa ed il Convento Domenicano di Santa Maria delle Grazie con "La Cena" di Leonardo da Vinci
1980년
밀라노 시내(롬바르디아주)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마지막 만찬」이 있는 교회이다. 다빈치는 1495년부터 1497년에 걸쳐 이 프레스코화를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아에 교회에 인접한 도메니코회 수도원의 식당에 그렸다. 그리스도가 12명의 제자중 자신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고한 직후의 장면이 최고의 기술로 장대하게 그려져 있다. 고딕 양식의 성당은 도미니코회의 수도사 솔라리에 의해 1466년부터 1490년 동안에 걸쳐 건축되었다고 하고 건축가 브라만테에 의해 회랑등도 더해져 아름다운 공간이 되고 있다. 최후의 만찬
피렌체 역사지구
Centro storico di Firenze
1982년
피렌체 시내(토스카나주州)
피렌체는 지붕이 없는 박물관이라고도 말해질만큼 마을 전체가 예술 작품으로 흘러넘치고 있다. 그 훌륭한 역사는 메디치가의 아래 르네상스(14세기부터 16세기)에 꽃을 피운다. 13세기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나 산타 크로체 교회, 우피치 미술관, 핏티 궁전 또한 죠토, 브루넬레스키, 보티첼리, 미켈란젤로라고 하는 대예술가의 작품이 아주 보통으로 마을 안에서 볼 수 있다. 예술의 마을, 화려한 도시 피렌체는 60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사람들을 계속 매료하고 있다. 피렌체의 두오모
베네치아와 그의 라구나br /> Venezia e la sua Laguna 1987년
베네치아(베네토주)
베네치아는 게르만족의 침공으로부터 피하기 위해서 5세기 무렵 습지대(라구나)에 거리를 만든 것이 시작이라고 말해지고 있는데 실제도 118개의 작은 섬으로 되어 있다. 10세기에는 해양 무역으로 번성하여 해운 공화국으로서 거대한 세력이 되었다.
건축물로는 두칼레 궁전이나 산마르코 대성당, 카나르 그랑데(대운하)가의 휘황 찬란한 귀족의 성이 많이 건축되었고 예술면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에 티지아노, 베로네제, 틴토렛트라고 하는 베네치아파로 불리는 화가를 배출했습다.
후에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 미국 대륙이나 동양 제국의 발견에 의해서 무역의 중심이 대서양이나 태평양으로 바뀌어 아드리아해의 여왕으로 불린 베네치아도 쇠퇴해 버린다.
그 때문에 마을에는 낡은 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고 차는 시내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여 거리 이동은 지금도 소형선 택시(밧포레트)만이 다닐수 있어 미로와 같이 아름다운 정경을 즐길 수 있다.
베네치아와 라구나
피사의 두오모 광장
Piazza del Duomo a Pisa
1987년
피사 시내(토스카나주)
마을의 중심에 있는 기적의 광장(피아트 데이 미라콜리 Piazza dei Miracoli)으로 불리는 실록이 흘러넘치는 광장이다. 11세기부터 12세기에 걸쳐 피사의 번영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례당, 대성당, 종루, 묘소 회랑이 있다.
종루(피사의 사탑)는 원통형의 8층 건물로 계단은 296단이 있다. 기울기는 지반의 약함이 원인으로 여겨지며 당초 예정의 약 반의 높이(55미터)로 완성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기울기의 경사가 점점 더해져 1990년에 출입 금지가 되었지만 2001년 12년에 10년에 걸친 개수 공사가 완료되어 다시 일반 공개가 개시되었다.
피사의 두오모 광장
산 지미냐노 역사지구
Centro storico di San Gimignano
1990년
산 지미냐노(토스카나주)
아름다운 탑의 마을 산 지미냐노는 로마를 순례하는 주요 가도 프란치제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당시 중요한 숙박 마을이었다. 13세기에 들어서 거리가 한층 더 번영하여 귀족의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서의 탑건설이 유행했다. 당시에는 50m가 넘는 탑을 포함하여 72개의 탑이 가내에 건설되었지만 현존하는 것은 14뿐. 마을도 14세기에 쇠퇴했기 때문에 13세기부터 14세기의 마을 풍경이 잘 남아 있다. 또 르네상스기의 명화가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산 지미냐노 역사지구
마테라의 동굴주거
I Sassi di Matera
1993년
마테라(바질리카다주)
8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동방으로부터의 수도승려가 정착했다고 말해지고 있는 동굴 주거 샷시. 샷소라는건 이탈리아어로 바위를 의미하고 있고 샷시도 석회암으로 된 여러층에도 겹져져 있다. 또한 샷시의 중심에는 13세기에 건축된 석조의 두오모(대성당)가 있다.
보통 바리(Bari)에서 열차로 가게 될 것이다. 바리에서 아르베로벨로의 투룰리에도 가기 쉽기 때문에 바리를 거점으로 관광하면 편리하다.
마테라의 동굴주거
비첸사 시내와 베네토 지방의 팔라디오의 빌라
Citta' di Vicenza e le ville del Palladio in Veneto
1994년
비첸사 및 베네토주내 몇군데
비첸사는 기원전 1~2 세기에 건설되었다고 하며 15세기에 베네치아 공화국의 통치하에 있었던 탓에 번영했다. 16세기가 되어 르네상스 최초의 전문 건축가라고 하는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활약했고 시내에 바질리카나 올림픽 극장 외 23개의 건축물이 남겨져 있다.
팔라디오의 건축 스타일은 영국 유럽 각국이나 북미에까지 퍼져 1994년에 베네토 지방에 점재하는 팔라디오 설계의 빌라가 세계 유산으로서 등록되었다.
팔라디오의 빌라
씨에나 역사지구
Centro storico di Siena
1995년
씨에나 시내(토스카나주)
시에나는 13세기까지 서유럽 최대의 금융가로써 번창해 당시는 피렌체와 나란히 견줄 정도의 강력한 도시 국가가 되고 있었다. 거리에는 12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고딕 건축이 눈에 띄고 예술면에서도 두쵸, 로렌토티 형제, 시모네 마티니 등에 의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중심가에는 「세계 제일의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말해지는 캄포 광장이 있고 그림의 도구에도 황갈색의 씨에나 색으로 불리는 색이 존재하고 있어 그 마을의 색, 토지의 색이 되어 있다. 씨에나 역사지구
나폴리 역사지구
Centro storico di Napoli
1995년
나폴리 시내(칸파니아주)
그리스의 식민지로서 기원전 470년에 건설되었다고 하는 바둑판과 같이 정연하게 만든 도시 계획 아래에서 「새로운 마을」을 의미하는 「네아폴리스」가 어원이 되었다고 말해진다. 베스비오 화산을 시작으로 하는 화산 지대에서 기원후 62년과 79년에 대지진의 피해를 당했다.
기원전 4세기에는 고대 로마, 11세기에 노르만에 지배되어 13세기에 안쥬가에 의해서 나폴리 왕국이 탄생했다. 그 후 16세기에 스페인, 19세기에 부르봉가에게도 지배되어 여러가지 문화를 흡수했다. 마을의 중심으로는 스페인 통치 시대의 왕궁, 로마 제국 시대의 난성, 안쥬가 연고의 누오보성이나 산타 키아라 교회가 남아 있다.
나폴리 역사지구
크레스피 닷다
Crespi d'Adda
1995년
카프리아테 산 제르바지오(롬바르디오주)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현 카프리아테 산 제르바지오에 19세기 산업 혁명시에 기업가 크리스토포 베니뇨 크레스피에 의해서 노동자의 이상향 = 유토피아로서 만들어진 마을이 크레스피 닷다이다.
자신의 공장 노동자와 그 가족을 위해서 앗다강 부근의 소유지 내에 마을을 만들어 방적 공장, 노동자용의 집, 학교, 병원, 교회, 묘지 등을 세워 당시로서는 확실히 획기적인 사상하에서 만들어진 환경이 좋은 마을이다. 지금도 공장자취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산책할 수 있다.
크레스피 닷다
페라라 : 르네상스기의 시가와 포강 델타 지대
Ferrara: citta' del Rinascimento e il delta del Po
1995년
페라라(에밀리아=로마냐주)
포강의 지류 포 디 보라노 유역에 있는 페라라는 14~16세기에 에스테틱가에 의해서 정비된 아름다운 마을이다.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나 되었고 비엘로 델라 프란체스카나 만테냐 등이 에스테틱가를 위해서 활약하여 예술의 수도가 되었다. 에스테틱가는 1598년에 페라라로부터 추방되어 마을은 교황령에 편입된다.
1492년부터 「이상 도시」를 목표로 해 새로운 마을 조성이 진행되어 지금도 그 도시 설계에 근거한 아름다운 거리 풍경이 남아있다.
페라라
델 몬테 성
Castel del Monte
1996년
안드리아시 교외(프리아주)
1240년 무렵, 당시 시칠리아 왕인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서 바리 가까이의 언덕에 지어졌다. 별장 또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고 하는 이 성은 전체가 팔각형을 하고 있고 각 각에도 팔각형의 소탑, 중심부에도 팔각형의 안뜰이 있다. 이슬람과 북방 유럽의 고딕적인 건축 양식의 조화가 훌륭하고 1유로 센트 동전의 이면에도 디자인 되어 있다. 델 몬테 성
알베로벨로의 트룰리
Trulli di Alberobello
1996년
알베로벨로
트롤리는 사렌트 반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식의 주거로 특히 알베로벨로가 유명하다. 흰색의 회반죽 칠의 벽에 원추형의 뾰족한 지붕이 사랑스럽고 동화에 나올 것 같은 형태를 한 건물이다. 놀라운 것에 선사시대로부터 전해지는 건축 방법으로 만들어진 건물이 현재도 생활에 사용되고 있고 관광객이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이 되고 있는 곳도 있다. 다만 겨울은 실내도 춥기 때문에 숙박시에는 충분히 주의해 주세요.
알베로벨로에는 바리(Bari)에서 열차로 갈 수 있어 당일치기 여행에도 딱 좋은 거리와 규모이다.
알베로벨로의 트룰리
라벤나의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물군
Monumenti paleocristiani di Ravenna
1996년
라벤나
아드리아해에 접한 라베나는 410년 서 고트족에 의한 로마 침략의 뒤 서로마 제국 그리고 동쪽 고트 왕국의 수도, 또한 동쪽 고트 왕국을 멸한 비잔틴 제국(동 로마 제국)의 서영역의 수도라고 하는 화려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5세기초에서 6세기말에 건설된 초기 크리스트교의 성당 및 예배당이나 모자이크화의 걸작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갈라 프라키디아 묘당, 대성당 부속 세례당, 산타포리나레 누오보 성당, 대사교관 예배당, 테오드릭크 묘, 산 비탈레 성당, 산타포리나레 인 크랏세 성당 등에 멋지고 선명한 모자이크가 남아 있다. 이것들이 1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은 확실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벤나의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물군
피엔자 시가의 역사지구
Centro storico della citta di Pienza
1996년
피엔자(토스카나주)
피엔자는 인구 약 2000명 정도, 동서 400미터 정도의 작은 아름다운 마을이다.
1459년에 당시의 로마법왕 피우스 2세상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피엔자를 「생각했던대로의 마을」 「이상의 거리」라고 할 수 있도록 건축가 베날드 롯셀리노에 의해 마을의 개조를 명했다고 하는 독특한 에피소드로 태어났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아름다운 피우스 2세 광장은 르네상스의 교회와 궁전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성당의 내부는 독일풍 고딕이 채용되어 있다. 르네상스기의 인간적인 도시 설계 사상이나 투시도법을 최초로 채용한 거리로서 귀중한 존재가 되고 있다. 마을 주위에 퍼지는 오르체 계곡의 경치도 훌륭하다.
몬테프르챠노 혹은 씨에나로부터 장거리 버스(TRA.IN)로 갈 수 있다.
피엔자 시가의 역사지구
카세르타의 18세기 왕궁과 공원, 반비텔리의 수도 다리와 산 레우쵸 저택군
Reggia di Caserta, il Parco, l'acquedotto Vanvitelli e il Complesso di San Leucio
1997년
카세르타(칸파니아주)
18세기에 나폴리 왕국 칼로 3세상이 베르사이유를 뛰어넘는 궁전을 목표로 해서 건축가 루이지 바비텔리에 의뢰한 왕궁이다. 1752년에 착공해 1780년에 완성을 맞이한 왕궁은 극장, 예배당, 박물관을 포함해 1200개의 방(2층의 36방이 일반적으로 공개)이 있는 거대하고 장엄한 건물이다. 궁전 뒤에는 전체 길이 3킬로, 120헥타르에 미치는 정원이 퍼지고 있고 폭포, 조각, 분수 등이 예술 작품 용으로 아름답다. 더 안쪽에는 큰 폭포가 흘러 떨어지고 있고 건축가 바비텔리는 정원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고대 로마풍의 아름다운 수도 다리를 건설했다고 한다. 카세르타 왕궁
사보이아 왕각의 왕궁군
Residenze Sabaude
1997년
토리노와 그 주변(피에몬테주)
16세기말 토리노를 사보이아 공국의 수도로 한 엠마누엘 피리 벨트공의 명령으로 도시 계획에 근거해 화려한 건물군이 건설되었다. 당시의 저명 건축가, 예술가들이 직접 한 궁전, 성, 거성은 그 후 이탈리아 왕이 된 사보이아가의 영화와 권세를 세상에 알리게 했다. 당시 왕궁의 상당수는 현재 박물관이나 공적 기관에 들어가 있지만 토리노 중심부의 왕궁이나 교외의 스토피니지 수렵 궁전 등에서 호화로운 일상 생활 용품이나 내부 장식을 견학할 수 있다.  
파도바의 식물원
L'Orto botanico di Padova
1997년
파도바(베네토주)
세계 최고의 식물원으로 1545년에 만들어졌다. 당시의 배치를 지키면서 입구나 난간 등의 장식이나 실용적 시설도 후세에 더해졌다. 당초의 목적대로 학술적 연구소로서 지금도 계속 존재해 식물, 의학, 약학, 환경학 등의 근대 학문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포르토베네레, 친퀘 텔레와 작은 섬군(팔마리아섬, 티노섬 과 티넷토섬)
Portovenere, Cinque Terre e Isole (Palmaria, Tino e Tinetto)
1997년
포르토베네레(리구아나주)
친크에텔레 라는건 「5개의 토지」라는 뜻으로 몬테롯소로부터 리오 맛죠레까지의 5개의 마을들의 총칭. 여기로부터 포르토베네레까지의 해안은 현재 국립공원이 되어 있지만 우뚝 솟아 있던 벼랑은 자연 조건을 극복해 1000년에 걸쳐 숨쉬어 온 촌락과 주위의 자연 경관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다. 작은 후미, 컬러풀한 집들, 벼랑 가의 길, 바다에 접해있는 교회 등 그림으로 그린 듯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모데나의 대성상, 토르레 치비카와 그랑데 광장
Modena: Cattedrale, Torre Civica e Piazza Grande
1997년
모데나(에밀리아 로마냐주)
건축가 람브랑코와 조각가 빌리제르모, 이 두 명의 위대한 예술가의 합작에 의해 완성한 모데나의 대성당은 12세기 초기 로마네스크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대성당 부속의 아름다운 종루 톳레 치비카는 시민들로부터 친밀함이 느껴지는 기르란디나(=작은 꽃)으로 불리고 있다. 이 대성당과 탑이 있는 그랑데 광장은 건축적 예술성이 높을 뿐만이 아니라 중세의 크리스트교 도시에 있어서 신자와 일반 시민의 공동체적인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폼페이, 에르코라노와 토르레 안눈지아타의 유적지역
Aree archeologiche di Pompei, Ercolano e Torre Annunziata
1997년
폼페이(칸파니아주)
79년 8월 24일에 분화한 베즈비오산은 풍부한 로마 도시 폼페이나 에르코라노 그 외 산록의 마을들을 재와 용암 아래로 매몰 시켰다. 18세기가 되어 발굴이 진행되 유복한 상업도시 폼페이의 광대한 유적이나 작지만 보존 상태도 좋은 리조트지 에르코라노 유적 그리고 토르레 안눈지아타의 오프론티스 별장지의 훌륭한 벽화 등에서 로마 시대 사람들의 사치스럽고 충실한 시민 생활의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다.  
아말피 해안
Costiera Amalfitana
1997년
아말피(칸파니아주)
해안에 절벽이 계속되는 이 일대는 해안선의 변화가 풍부해 멋진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중세 초기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해 중세의 해양 공화국으로서 번창한 아말피나 라베로 등의 거리에서는 뛰어난 건축물이나 예술 작품도 창출했다. 험한 암벽이 계속 되는 지형을 사람들은 포도나 레몬의 밭, 과수원, 방목지 등으로 여러가지로 활용해 감청색의 바다와 함께 지중해적이고 드라마틱한 독자적인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배출했다.  
아그리젠토의 유적지역
Area Archeologica di Agrigento
1997년
아그리젠토(시칠리아주)
기원전 6세기부터 그리스 식민지로서 아그리젠토는 고대 지중해 세계의 중요 도시의 하나였다. 위엄 있는 도리아식 신전이 거리 어디든 지어져 아그리젠토의 패권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한 20개 가까운 신전 유적군이 아몬드 나무나 과수가 퍼지는 언덕에 지금도 「신전의 골짜기」로 불리며 남아 있다. 보존 상태가 좋은 콘코르디아 신전을 시작으로 하는 고대 그리스 신전군의 이외에 이 일대에서는 헬레니즘, 로마 시대의 도시 유적이나 전 크리스트교 시대의 매장 자취등도 출토되었다.  
빌라 로마나 델 카사레(카사레 별장)
Villa romana del Casale
1997년
피아짜 아르메리나(시칠리아주)
로마 제정 시대의 3-4세기에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이 전원에 세운 호사스러운 별장자취. 상당히 호화롭게 지어진 건물로 특히 거의 전실의 마루를 다 메우는 모자이크화의 질 높음과 규모는 고대 로마 시대 최대라고도 한다. 모자이크에는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은 동물이나 비키니의 여성 등 참신한 그림 모양도 그려져 예술적 가치도 높다. 당시 이 땅까지 경제력을 미친 고대 로마 문명의 자취도 볼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수 누라시 디 마루미니
Su Nuraxi di Barumini
1997년
바르미니(사르데냐주)
사르데냐 섬에는 기원전 2000년 전부터 청동기 시대의 무렵에 누라게라고 불리는 거석을 원통, 원추형으로 쌓아 올린 이 섬 독특한 요새 구조의 건물이 선주 민족에 의해 만들어졌다. 바르미니 마을에 있는 수 누라시 유적은 기원전 15세기 전후로부터 지어진 누라게의 거대한 성새, 탑, 취락, 방벽 등의 대집합체로 선사시대의 건축의 예로서 아주 중요하다.  
아퀼레이아의 유적지역과 총주교 성당 바질리카
Zona Archeologica e Basilica Patriarcale di Aquileia
1998년
아퀼레이아(프리우니 베네치아 쥴리아주(
아퀼레이아는 로마 제정 초기 대사교 좌석도 놓여져 로마 제국 네번째로 풍부한 상업도시였지만 5세기에 분족의 앗틸라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었다. 유적의 상당수는 미발굴인 채 지하에 묻혀있다. 총주교 성당 바질리카의 마루밑에서 발견된 마루 일면을 가린 4세기의 모자이크는 장관 그 자체로 아퀼레이아가 동방 중앙 유럽의 중계지로서 크리스트교 전도라고 하는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르비노 역사지구
Centro storico di Urbino

1998년

우르비노(말케주)

우르비노는 15세기에 예술 문화의 중심지로서 그 이름을 떨쳤고 이탈리아나 유럽 각지로부터 학자나 예술가들이 모였다. 16세기 이후 문화와 경제는 쇠퇴했지만 언덕 위의 이 작은 거리는 지금도 르네상스적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고 있다. 당시의 번영을 이야기하는 듀칼레 궁전은 현재 말케 국립 박물관으로서 이 땅에서 태어난 거장 라파엘로의 회화를 시작으로 많은 볼만한 가치가 있는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파에스툼과 베리아 고대 유적군을 포함한 치렌토와 디아노 계곡 국립공원과 파두라의 카르투지오 수도원
Parco Nazionale del Cilento e Vallo di Diano con i siti archeologici di Paestum e Velia e la Certosa di Padula
1998년
파에스툼(칸파니아주)
치렌트 디아노 계곡 국립공원과 그 주위 일대는 선사시대로부터 중세에 걸쳐 상업,정치, 문화면에서 역사적인 변천을 거쳐 온 지역이다. 고대 그리스 식민지와 이탈리아 원주민족의 경계지이기도 하고 기원전 5세기 무렵 번영 파에스툼과 베리아에는 고대 그리스의 신전이나 유적이 남아 있다. 초록의 계곡에 퍼지는 파두라에는 14세기에 창립된 남 이탈리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산 로렌조 카르투지오 수도원이 있다.  
빌라 아드리아나(하드리아누스제의 별장)
Villa Adriana
1999년
티볼리(라치오주)
로마 제국 하드리아누스제가 2세기에 세우게 한 광대한 별장자취. 황제가 방문한 제국의 영토내 각 장소를 떠올리게 하는 건물이나 신전, 목욕탕 등 이집트, 그리스, 로마적 요소를 가진 건물군이 보기 좋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고전 건축군의 훌륭함은 후세의 건축이나 디자인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베로나 시가
Citta' di Verona
2000년
베로나(베네토주)
역사적 도시 베로나는 기원전 1세기에 탄생해 13-4세기에는 스칼라가 통치하였고 15-18세기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일부로서 번창했다. 고대 로마 시대의 원형 격투장 아레나나 중세의 성 카스텔 베키오, 르네상스기의 건축물 등이 지금도 많이 남겨져 있다. 로미오와 쥴리엣의 무대나 되고 있는 아름다운 거리는 또한 예술을 접목시킨 2000년에 걸쳐 계속 꾸준히 발전한 요새 도시의 좋은 예이기도 하다.  
아씨시, 프란체스코 성당과 관련 수도 시설군
Assisi, la Basilica di San Francesco e altri siti Francescani
2000년
아씨시(움브리아주)
아씨시는 성프란체스코 연고의 크리스트교 신자의 순례지. 장엄한 성프란체스코 성당 내부를 장식하는 거장 죠토, 치마브에, 마르티니, 로렌죠티 등의 프레스코화의 여러가지는 중세 미술 사상에서도 중요하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의 역사 있는 이 거리는 움브리아의 아름다운 자연과 성인이 말한 평화의 가르침 그리고 후세의 건축, 미술의 기초나 된 종교 건축물군이 일체화한 정신적,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숨어있는 장소이다.  
티볼리의 빌라 데스테(에스테가 별장)
Villa d'Este
2001년
티볼리(라치오주)
이 에스테가 별장의 관과 정원은 세련된 르네상스 문화의 미의 결정이다. 특히 신록이 풍부한 정원에는 풍부한 물과 조각 등의 장식으로 꾸며진 분수가 많이 만들어져 16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화려한 정원 예술일 뿐만 아니라 그 후의 유럽 정원 설계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발 디 노토의 후기 바로코 양식의 마을들
Citta' Barocche del Val di Noto
2002년
노토 라구사 카타냐 등(시칠리아주)
시칠리아섬 남동부에 있는 발 디 노토라고 불리는 장소 주변의 8개의 마을들은 1693년 에토나산 주변 지역을 습격한 대지진에 의해 마을이 전멸된 것에서부터 도시 계획에 의한 경이적인 재건을 통해 훌륭한 후기 바로코 양식의 건축과 예술을 마을에 꽃피게 했다. 지금도 각 거리에는 아름다운 장식을 가한 바로코 양식의 건물이 많이 남아 아름다운 경관을 보이고 있다.  
피에몬테주와 롬바르디아주의 사크리 몬테
Sacri Monti del Piemonte e della Lombardia
2003년
바랏코 세지아(피에몬테주)등
「사크리 몬티」란 「사크로 몬테」의 복수형으로 「성스러운 산」을 의미한다.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에 걸쳐 크리스트교 신자의 순례를 위해 산에 수많은 예배당이나 성당이 지어졌다. 등록된 북 이탈리아 9개의 사크로 몬테 모두 참배지로서 신성한 분위기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덕, 숲, 호수라고 하는 자연 환경과 건축물군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건물 내부의 종교 벽화, 목조 등은 예술성도 대단히 높아 건축, 예술과 자연을 보기 좋게 융합시킨 성공적인 예이다.  
오르챠 계곡
Val d'Orcia
2004년
오르챠 계곡 일대(토스카나주)
씨에나의 남동부에 펼쳐져 있는 이 일대는 14-15세기에는 씨에나의 영토가 되어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경관으로 소중히 여겨져 왔다. 완만한 언덕으로 뻗어있는 아름다운 풍경은 르네상스 시대때에도 지금도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아 창작 의욕을 많이 자극하고 있다. 한가롭고 아름다운 목가적인 자연이 농가나 취락, 가도나 길가의 수도원이나 숙소 등과도 융합되어 둘러쌓인 경관은 훌륭하다. 피에짜, 몬타르치노, 카스티리오네 도르챠 등 5개의 마을과 그 전역은 「발 도르챠 미술, 자연, 문화의 공원이 되어 있다.  
체르베테리와 타르퀴니아의 고분군
Necropooli etrusca di Cerveteri e Tarquinia
2004년
체르베테리, 타르퀴니아(라치오주)
에토르리아는 기원전 9세기와 기원전 1세기의 사이 중앙 이탈리아에 존재한 무역이 돋보인 고도의 문명을 갖고 있었다. 상제 예술에도 뛰어나 「네크로폴리(죽은 사람의 거리)」라고 불리는 대규모의 모뉴멘탈인 분묘의 유적을 남겼다. 체르베테리의 고분군은 길을 따라 집처럼 분묘가 줄서있어 마치 마을과 같다. 타르퀴니아에 있는 6000개의 고분중 200개는 내부에 선명한 벽화로 장식되어 있어 아주 흥미롭다. 낡은 벽화는 기원전 2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시라쿠사와 판타리카 절벽의 분묘군
Siracusa e la necropoli rupestre di Pantalica
2005년
시라쿠사와 그 주변(시칠리아주)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 식민지가 건설된 시라쿠사는 당시 Cicero가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그리스 도시」라고 칭찬한 것처럼 대단한 번영을 이루었다. 지금도 이 거리에는 아테네 칸도노(후에 교회로 바꿈), 그리스 극장, 로마 극장 등 당시의 건물 외에 그 후 차례차례로 시칠리아섬을 지배한 문명과 역사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판타리카는 원시시대 시칠리아의 중요지의 하나였다. 네크로폴리라고 불리는 고분에는 암면에 동굴과 같이 파진 500개 이상의 무덤이 있고 그 대부분은 기원전 137세기의 것. 또한 주변에는 비잔틴 시대의 것으로 보여지는 유적이 아나크트론이라고 불리는 왕궁 철거지의 곁에 남아 있다.  
제노바 : 레 스트라데 누오베와 팔라쵸 데이 롤리
Genova Le Strade Nuove ei Palazzi dei Rolli
2006년
제노바(리구리아주)
16세기에 총독 도리아의 지배 아래 스페인과 동맹을 맺어 유럽 카톨릭 세계의 메인 은행이 되어 금융업으로 번영한 제이노바 공화국. 전세계에서 방문하는 내빈용 영빈관의 필요성으로부터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부유 귀족층이 사는 호화로운 사택, 대저택을 엄선해 “롤리”라고 불리는 리스트에 등록시키고 그것들을 국가 내빈의 숙박지로서 법으로 제정했다. 「팔라쵸 데이 롤리 (롤리의 관)」라고 불린 이러한 대저택군은 건축적으로도 가치 있는 것이 많고 그 때문에 차례차례로 새로운 길(스트라데 누오베)이 만들어졌고 그 길은 아름다운 르네상스나 바로코 양식의 저택이 세우지는 유력한 귀족의 호사스러운 대저택지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1551년부터 정비가 시작된 최초의 새 길은 현재 걸리버 루디 거리로 이름이 바뀌어 16세기 공화국의 정치를 장악한 유력 귀족이 세운 매우 호화로운 대저택의 건물들이 현재는 미술관이나 시청사, 은행 및 점포등으로 바뀌어 당시의 영화를 지금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