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시의 성녀 키아라는 부친이 정한 결혼에 비관해서 가출!?

산타키아라 성당 아씨시 마을의 동쪽에 있는 누오보 문으로 들어가면 첫번째 교회가 산타 키아라 성당. 아시씨의 특징인 흰색과 핑크색의 석회암 줄무늬가 아름다운 교회이다.
산타키아라 성당 지하에는 성키아라의 묘 이외에 그녀가 만든 옷이나 그녀의 머리카락, 성프란체스코가 입고 있던 구두등도 전시되어 있다.

산타키아라 성당 교회안에는 프레스코화나 나무판에 그린 그림으로 성녀 키아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타키아라 성당 성키아라 성당의 파자드(정면)는 서쪽을 향하고 있으므로 황혼시에는 붉게 물들어 아름답다. 또 교회 광장은 테라스로 되어 아씨시의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가련한 여자아이였던 키아라는 결혼이 싫어 가출, 그리고 출가....

이탈리아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는 움브리아주 아씨시의 명문 귀족의 집에서 1194년에 키아라는 태어났다. 그녀는 성프란체스코에 귀의한 사람들 중 최초의 한 명으로 되어 있고 성인으로서 매우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만남은 작은 우연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그녀가 16세때 마을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프란체스코를 만나 그의 말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2년 후 키아라의 부모님은 딸을 유복한 가정에 시집을 보내기로 결정해 버린다. 비관한 키아라는 집을 뛰쳐나와 성프란체스코의 곁으로 가서 신자로써 받아들여 졌다.

교회의 지하에는 800년전에 그녀가 입었던 옷도 전시되어 있다.

키아라는 프란체스코가 호소하는 「청빈, 정절, 순종」의 맹세를 받아 들이고 그가 신의 소리를 들었다고 여겨지는 산 타미아노 교회에서 수녀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것은 기원과 노동을 일과로한 매우 검소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산타 키아라 성당의 지하에는 그녀가 만든 옷도 보관되고 있어 그녀들의 검소한 생활을 엿볼 수도 있다.
그녀는 그 후 프란체스코회의 여자 수도회인 「키아라회」를 창설하고 많은 비구니들을 받아 들인다. 일찌기 부호와 결혼을 진행시킨 어머니 오르트라나도 이후에 딸 키아라의 수도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흰색과 장미색의 화려한 교회가 산타 키아라 성당이다.

프란체스코는 큰 애정을 가지고 키아라가 연 수도회를 후원하고 키아라도 프란체스코를 정신적인 아버지와 여기며 평생 존경했다. 그가 병으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키아라는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키아라는 성프란체스코에게의 충성때문에 가끔「또 한사람의 프란체스코」라고 불릴 정도이다.
1253년에 키아라가 죽자 곧바로 그녀를 받드는 산타 키아라 성당의 건설을 시작했다. 아씨시의 마을에도 많이 사용되는 흰색과 장미색 석회암을 줄무늬로 겹쳐 쌓아 중앙에 장미창과 입구를 한개씩 배치했을 뿐의 매우 심플하고 아름다운 교회이다.
교회앞 광장의 중앙에는 분수가 있어 교회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또 그 광장은 테라스 상태가 되어 있어 아씨시의 마을을 일망할 수 있다. 아름다운 교회와 아름다운 전망은 확실히 아씨시의 보물이다.

덤:성 키아라는 텔레비젼의 수호성인!?

이탈리아에서는 마을이나 직업에 그 마을이나 직업을 지키는 「수호 성인」이라고 하는 성인이 있다. 1958년에 당시의 로마교황 피우스 12세상은 성키아라를 「텔레비전의 수호 성인」이라고 했다. 이는 병으로 쓰러진 키아라가 자신의 방의 벽을 보고 미사를 올리고 미사의 설화를 들었다고 하는 기적에 근거하고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산타 키아라 성당(Santa Chiara)
장소:구시가지의 동쪽. 누오보 문에서 걸어 1분
전화:+39 0758-12282
개관시간:
 【여름시기】6:30-12:00 14:00-19:00
 【겨울시기】6:30-12:00 14:00-18:00